2009년 04월 02일
이젠 뭐.....
오랫만에 진주팀과 비박 산행에 따라 나섰다.
지난 11월 원강재 이후 처음이니 약 4개월만이다.
유대장님, 심마니형님, 카이맨형님, , 객꾼, 덕불고 그리고 나.

하부운에서 세걸산 동릉을 치고 올라 서북능선을 따라 바래봉까지 이동하여 박을 한 다음
바래봉 동릉을 꼬리 끝까지 리딩하는게 이번 산행의 목표다.
다들 한 두번씩 걸어 본 적이 있기에 이 길에 새롭고 신선한 기대는 없고,
다만 지리산 자락에 오줌 꽤나 지린 인간들이 모였으니 무슨 일이 벌어질지 그게 더 궁금했다.

첫 쉼터에서부터 술이 돈다.
아침에 짐을 나눌 때 내 눈으로 확인한 것만 해도 팔선주 1.8리터짜리 네 개.
소주 댓 자가 한 개. 두홉들이가 몇 개. 객꾼이 넣어 온 생막걸리 반 말. 거기에 각자 비장의 무기를 숨겨 왔을터.....
앉은 자리에서 사과 안주로 막걸리 반 말을 홀랑 비우고 자리를 털었다.

세걸동릉은 시작부터 코가 땅에 닿는 오르막이다.
시작부터 끌어 당기는 유대장님의 뒤를 잡고 따르니 금새 몸에 열이 오르고 아드레날린이 솟는다.
길은 더하지도 덜하지도 않게 뚜렷하지만 곳곳에 두 손 두 발 다 써야할 구간이 있어서 산행하는 재미를 더한다.
거기에 알콜까지 몇 잔 들이 부었으니 사람 대신 배낭들이 벌러덩 드러 누웠다.

덕동마을에서 오르는 길과 세동치로 바로 빠지는 길이 갈리는 사거리에서 두 번째 휴식을 취했다.
유대장님, 심마니형님, 덕불고, 그리고 객꾼.
대간과 지맥하느라고 외도 중인 객꾼만 빼면 나머지는 지리산에 코를 박고 산다.

서너 번의 가파른 사면을 치고 나니 세걸산이 벌써 코 앞.

산행대장 유대장님.
유대장님이 없는 진주팀을 상상한다는게 참 쉽지 않다.
과묵하지만 확실한 성격이라 말 많고 시끄러운 갱상도 남자들도 그 앞에서는 꼬리를 내린다.





세걸산 아래엔 세동치가 있다.
세동치에는 맑은 샘물이 일년 내내 흐른다.
이 샘은 서북능선의 오아시스다.
자리를 펴고 점심상을 차렸다.
불고가 가져온 꽃등심에 팔선주가 날아 다닌다.
오후 팀 몫으로 팔선주가 남겨지가 이젠 소주 댓병이 잠시 보이더니 이내 바닥을 드러내고,
그렇게 두 시간을 앉아서 노닥거리며 점심을 먹었다.
다시 패킹을 하고 길을 나섰을때 심마니형님과 카이맨형님 그리고 개꾸이는 이미 눈동자가 풀릴 지경이었다.


대간 종주와 어지간한 지맥 다 끝내고 몇년째 지리산에 미쳐서 산다.
진주팀이 치르는 대규모 산행이나 행사에 형님이 빠지면 올스톱이다.
다음 주 수도권 산행 기획하느라 요즘 머리가 빠질 지경이란다.
하여튼 산행 능력 만큼이나 부지런하고 수완 좋은 양반이다.

참 선한 놈이다.


아직 더 연구 해봐야 결론이 날 듯......
그래도 산에 딱 한 사람만 데리고 가야 한다면 나는 이 인간이랑 가고 싶다.

운봉들녁을 내려다 보며 지난 달 친구와 아이들 데리고 대간 복성재 산행에서
저기를 황산벌인줄 알고 신라군과 백제군의 말도 안되는 전투상황을 침 튀기며 논했다는
객꾼의 이야기에 다들 배를 잡고 웃었다.

아예 퍼질러 앉아서 술판도 벌여보고
이런 저런 실없는 소리로 시간을 죽이면서 걸었지만
벌써 팔랑치다.


박지에 도착해서 펼쳐진 객꾼의 세레머니.
이미 술에 혼을 팔아버린 객꾼의 재롱에 다들 즐겁다.

바래봉 샘터는 아늑하고 호젓한 곳이다.
그러나 북사면으로 열려서 겨울에 바람이 치기 시작하면 비박이나 야영을 하기엔 적당치 않다.
어쨌든 수량도 제법 많고 물맛도 좋은 샘터가 곁에 있다는건 비박지로서야 최고.
근처에 적당히 사이트를 설치하고 장비를 꺼내 놓고나서도 시간은 한참 일러 해가 중천이다.


바래봉도 어둠에 잠기고 지리에 밤이 찾아온다.

산에서 밤이 내리면 할 일이 뭐 있을까?
먹고 마시고 떠드는 것. 그 외에는 딱히 할 일 없다.
쭈꾸미볶음으로 시작해서 돼지고기 두루치기, 토종닭 숯불구이로 안주가 나가는 동안
팔선주, 소주, 백주, 그 외에 이름도 기억 안나는 술들이 바닥을 드러내고 뒹군다.
술에 영혼을 팔아버린 객꾼은 족보도 나이도 무시하고 너나들이로 형님들을 곤혹스럽게 하고,
옆에서 지켜보는 우리는 대리만족에 빠져 배를 잡고 낄낄거리고 뒹굴었다.

낮고 두꺼운 구름이 깔린 하늘은 일출이 없을듯 하다.
산책삼아 바래봉 정상으로 오르다 뒤돌아본 서북능선도 조요하게 아침을 맞는다.
해는 이미 주능선을 비껴나 등구재 위로 한참을 올랐다.

대장님
산이 어디 갑니까?
다음에 또 오면 되지요.

이 양반들 아침부터 또 다시 술이다.
어젯 밤 술 김에, 어두워서 못찾아 마셨던 술병들을 기어이 찾아내서 해장술로 발동을 건다.
아침부터 술잔따라 오가는 실없는 소리와 뜨거운 닭국물로 속을 데우고 다시 패킹

객꾼의 스틱 잡은 자세를 눈 여겨 볼 것.


출발

산죽과 잡목을 뚫고 얇은 능선상으로 이어진 동릉길은 닳고 닳은 등로가 아니라서 걷는 즐거움이 있다.

주구장창 마신 술이 어디가나?
앞에서 달리는 비주류들 따라 잡느라
풀린 다리 끌고 뒤따르는 비주류들 진땀이 날 지경이란다.
그래도 곡소리 안들리는것 보니 독하긴 독한 양반들이다.

퇴수정 앞 너른 반석이 우릴 반긴다.

그런데 이 양반들....또 시작이다.
덕불고와 부운마을로 가서 차를 회수해오니 그 동안에 벌써 소주 맥주 사다가 판을 벌렸다.
경치 좋은 곳에서 기생 불러다가 술 마시는 곳이 정자라고 우기는 이 인간들에게
세상을 물러나 조용히 수양하겠다며 퇴수정을 세운 박치기가 살아서 돌아 온다면 뭐라고 할까?

花開半(화개반) 酒微醉(주미취)라는 옛 경구는 헛되어
花(화) 는 아직 필 생각도 없는데 酒(주)는 이미 大醉(대취)해 버린 1박 2일이었다.

# by | 2009/04/02 14:28 | 트랙백 | 덧글(0)

































